Monday, February 28, 2011

예술적 통일성의 미학 - 한국다운 리얼리즘

엄격하지만 친근한 한옥의 입면
한옥의 입면은 엄격하면서도 친근하다. 벽을 흰색 회반죽으로 마감한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적어도 백색의 순결주의와도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니 일단 컬러 코드에서 엄격한 편이다. 그 사이를 외장 마감을 별도로 하지 않은 나무 기둥과 보가 가르고 지나가면서 구성 분할을 해대는데, 가름의 정도가 꼭 필요한 것 이상의 쓸데없는 욕심은 없어 보이니 흰 회벽에 더해 보면 이 또한 엄격한 몸가짐의 선비 행색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단정 지어 끝내버리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틀림없이 한옥 입면의 인상이긴 하지만 이것 말고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파르르한 추상미라고 부르기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한옥의 입면과 비슷하게 생긴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에서 보는 것 같은 옴짝달싹 못할 이상미는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완벽한 비례의 한 가지 상태를 포착해 얼음처럼 굳혀 놔서 도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추상같은’ 추상미와는 다른 종류이다. 자의적 해석을 허락해주는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집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기둥 하나쯤 한두 자 옆으로 슬쩍 옮겨도 야단맞을 것 같지는 않다. 짐짓 눈이나 한 번 흘기고 다시 제자리로 되 옮기면 전부일 것 같다. 그나마 그 위치도 정확히 처음의 그 자리가 아니어도 개의치 아니할 것 같다.


창녕궁위재사 한옥의 입면은 흰 벽을 바탕으로 가름이 명확하기 때문에 언뜻 꼿꼿한 선비를 보는 것 같은 엄격함이 있다.


왜 이럴까. 흰 회벽을 갈색 나뭇결의 기둥과 보가 가르고 그 사이에 창이 들어가는 장면은 한옥이 만들어내는 2차원 평면 장면 가운데 백미일 수 있다. 이것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깨끗해지는 것 같다. 참으로 간결하고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추상미의 정수이다. 커지면 또 커질 수밖에 없는 지배계층의 탐욕을 제어하는 역할을 분명히 했을 것 같다. 세도가로 흘러갈지라도 처음 출발은 글 읽는 선비였을 그 검소함의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격하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 차를 달려 대문을 박차고 중문을 뛰어 이놈의 한옥 입면 앞에 서면 불같던 분노나 욕망은 스르르 잦아들곤 한다. 그만큼 엄격하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을 찾아내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서늘한 아방가르드 추상과는 다른 온기랄까, 소탈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친근하다. 한옥 입면은 엄격하면서도 친근하다.


한국다운 리얼리즘의 장면
왜 이럴까. 형성과정부터 그렇다. 추상의 영어 어원을 따져보면 “추출해서 없앤다”이다. 구상의 지칭 가능한 개별성을 찾아내 없애고 또 없애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무 것이나 갖다 붙여도 생떼만 쓰면 말이 되는 보편성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보통 추상이라 부른다. 한옥의 입면은 다르다. 그 지향점이 개별성을 지워 없애려는 추상과 오히려 반대이다. 개별성을 존중해서 개별 요소의 가치를 드러내도록 해준다. 개별의 가치가 전체에 눌려 소멸되지 않게 해서 개별 요소가 조형적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양진당 행랑채 한옥의 벽 분할과 창 구성은 엄격하지만은 않아서 엉성한 인간미에 유추할 수 있는 의인화 성격을 함께 갖는다.
  

왜 그럴까. 한옥 입면의 분할에서 기둥과 보, 그리고 창의 위치는 철저하게 방 안 사용자의 형편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황금비나 모듈, 표준화나 대칭 같은 선험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최고의 심미성을 잃지 않는 이상적 비례가 있으니 이것을 지상에 구현해야 한다거나, 산업을 일으켜 더 빨리 더 많이 지어 더 많이 가져야겠다며 모든 방을 동일한 규준(規準)으로 자르고 좋아한다거나, 이 둘을 합해서 다 가지려 데칼코마니처럼 집을 상하·전후·좌우로 동일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방 안에 사는 사람의 살이와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을진대, 이런 선험적 가치를 우선하다 보면 사람들은 매번 자신이 원하는 형편과 살이를 포기하고 전체 가치에 맞춰야 한다.

한옥에는 이런 것이 없다. 그 반대이다. 방은 필요한 크기로 자르면 되고 그 위치가 한정하는 기둥과 보는 그대로 입면에 구성 분할을 그린다. 리얼리즘이다. 선험적 이상주의에 반대되는 귀납적 리얼리즘이다. 안방은 안방대로 건넌방은 건넌방대로. 문을 열면 마주하는 공간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활짝 대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 있을 터, 창문을 그에 맞게 내면 그만이었다. 반쯤 가려서 선택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을 통해 오가는 발걸음의 방향을 이쪽에 두는 것이 좋은 식구도 있을 것이고 저쪽에 두기를 원하는 식구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능한 한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 결과 한옥에서 창문은 이렇게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지키도록 났던 것이다.


안동권씨 능동 재사 한옥 입면의 분할은 르네상스 팔라초나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이상비례에 묶이지 않고 헐거운 도포자락 같은 넉넉한 구성미로 발전한다.


그래서 틈을 내주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장식과 화려한 마감을 절제해서 선비의 근검을 지켰지만 이것이 인정을 잃고 파르르한 결기가 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온기를 품을 틈을 내준 것이다. 식구 구성원 각자, 즉 사람의 요구가 집의 전체 질서보다 우선시된다. 유교의 인의 정신에 기초한 한국다운 인본주의와 리얼리즘의 장면이다. 창문이란 방 안 사람이 방 밖에 대해서 필요로 하는 형편을 맞춰주기 위해 벽에 뚫는 구멍이다. 한국 사람들은 선험적 가치가 이런 현장의 필요성에 우선해서 사용자의 손해를 강요하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옥의 창은 그렇게 자유롭고 친근하게 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주제와 변주에 의한 구성미
그래서 한옥의 입면은 한국다운 어울림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적인 장면이다. 전경이 3차원 덩어리들이 모여 어울린 결과라면 입면은 회벽, 기둥과 보, 창문 등 2차원 요소가 모여 어울림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한옥 입면의 어울림은 추상미보다는 구성미에 가깝다. 구성미에도 종류가 있는데, 한옥에서는 창문의 위치와 크기를 자유롭게 낼 수 있게 되면서 주제와 변주에 의한 구성미가 나타난다. 큰 분위기는 공유하면서(=주제), 개별 요소들 사이에 세부적으로 차이를 줘서(=변주) 어울림의 효과를 구성미로 끌고 간다. 같은 창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르지는 않아서 전체적으로 공통적 분위기가 유지된다. 통일성과 다양성,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추구한다.


청풍 도화리 고가 창의 개수가 많아지면 주제와 변주에 의한 예술적 통일성으로 발전한다. 개체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전체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이런 조형 기법을 예술적 통일성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산업적 동일성을 거부하지만 예술적으로는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공통 모티브를 건물의 이곳저곳의 형편에 맞춰 적절하게 변형, 적용시키다 보면 전체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은 지켜주는 종합적 어울림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도 동북아의 전통미학을 접한 다음에 등장했던 미술공예운동에서 아르누보에 이르는 예술운동까지 예술적 통일성을 핵심 강령으로 추구했다. 이는 물론 당시 산업혁명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거두기 시작하며 괴물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산업주의의 폐해가 사람 사는 집안 방구석에까지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숭고한 예술정신의 전형으로 추구되었다.

한옥 입면에서 예술적 통일성은 동일면과 꺾임 면 두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큰 차이는 없다. 동일면에서는 2차원 평면다움이 좀 더 두드러지고 마주보는 꺾임 면에서는 입체감이 좀 더 든다는 점이 차이이다. 중요한 점은 한옥에서는 외관을 빙 돌아가며 예술적 통일성의 장면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이런 장면은 한국 특유의 가족적 어울림에까지 의인화시킬 수 있다. 뭉쳤다 떨어지고 듬성듬성 모여 있는 창의 구성 장면은 큰 방 안에 식구들이 자유롭게 모여 살아가는 한국다운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불교사상 - 비움과 불이사상

비움과 불이사상
한옥과 불교는 연관성이 가장 적어 보인다. 유교시대 반가인 한옥은 국시를 충실히 좇았다면 불교를 배척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옥에는 불교 사상의 영향을 추적할만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안팎 사이에 구별이 약한 한옥 공간의 특징으로 이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바탕에 갖는다. 비움의 미학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이는 도교와 불교 사이의 연관성의 하나로 보면 된다. 불이사상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한옥 공간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한옥의 누각구조는 유마경의 불이사상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불이사상은 유마경 제9 입불이법문품에서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공간의 분별을 경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부분적으로 발췌하면 “비움과 모습 없음과 지음 없음이 둘이라 하나 비움이 곧 모습 없음이요 모습 없음이 곧 지음 없음이라”라거나, “몸(=다함)과 몸 사그라짐(다함없음)이 둘이라 하나 몸이 곧 몸 사그라짐인지라 몸이 실다운 모습을 보는 자는 몸을 보는 것과 사그라지는 몸 보는 것을 일으키지 않으니 몸은 사그라진 몸으로 더불어서 둘이 없고 판가름이 없음일 새”라고 했으며 “것의 성질이 본래 비움이라”라고도 했다.

물질적 벽이 있는 상태와 이것이 없는 상태가 서로 다른 것이라 하나 실은 모두 비움이라는 한 가지 같은 상태라는 가르침이다. 열림과 닫힘, 투명과 불투명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구별은 모두 벽이라는 껍질 및 여기에서 파생되는 에워쌈과 육면체의 고형적 물성을 공간형성의 기본 매개로 본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허깨비, 가짜, 거짓으로 실은 없는 것에 불과하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며 진실한 것은 비어있는 상태이다.

비움에 대해 해석해보면, 비움은 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본래부터 빈 상태이다. 비움을 벽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벽에 대한 부정의 상태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벽이 있고 난 다음에 있는 상태, 항상 벽에 기대서만 정의되는 상태, 벽에 의해서만 한정되는 상태이며 벽을 1차 출발점으로 삼아 형성되는 2차 상태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움은 이것 자체가 처음부터 비움으로, 하나의 독립적 완결된 상태로 존재한다. 1차 존재 상태이다. 벽이 오히려 비움에서 파생되는 2차 상태이다. 비워있는 상태에 칸막이를 친 것이 벽이기 때문이다. 비움이 정의되어야 그 속에서 물질이 존재를 확보할 수 있다.


대방광(大方廣)
이 문제는 결국 공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되며 진공상태와 칸막이 중 누가 우선이냐는 문제가 된다. 불교에서는 공간의 본질을 우주 전체로 본다. 시작과 끝이 없고 따라서 경계도 없는 무한대의 진공 상태로 본다. 대방광(大方廣)이라는 개념이다. 건물은 이 속에 임시로 칸막이를 친 것에 불과하다. 안팎을 구별하는 것은 부질없는 분별일 뿐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공간을 벽과 벽이 한정하는 면적과 에워쌈의 상태로 본다. 비바람을 막아주어야 하며 넓을수록 좋고 그래서 그 속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산동교리댁 문은 불교의 대방광에 최소한의 구획만을 
가한 칸막이일 뿐이다.
귀촌종택 빈 공간에 엉성하게 짠 칸막이만으로도 집은 훌륭
하게 기능하는데 이는 불교의 불이사상과 대방광 개념을 합
한 예이다.


불교의 대방광 개념에 의하면 이런 공간 개념은 헛것이거나 잘해야 부질없는 욕심이 된다. 이 문제는 벽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간에게 공간은 물론 최소한의 공리성을 가져야 한다. 육체와 생활을 담아내서 최소한의 물리적 존재 조건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물질적 벽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정도인데, 불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공간은 대방광의 상태를 닮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해도 사람이 왔고 사람을 낳은 근원적 공간 상태인 대방광을 닮아야 한다. 비움에서 불이로 이어지는 한옥의 공간은 대방광을 닮은 좋은 예이다.

대방광은 반드시 큰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고의 대방광은 물론 우주 전체이지만 모든 완결된 존재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때 완결된 존재 상태를 구성하는 개체와 개체, 그리고 개체들이 모여서 이루는 전체 사이에 불이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대방광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지극히 큰 것(=전체)과 지극히 작은 것(=개체) 사이에 분별과 차별이 없이 하나로 통하는 상태 역시 대방광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로서의 대방광은 이 둘이 아예 하나로 같아져 있는 상태이다.

한옥의 방은 좋은 예이다. 벽을 고정시키기보다 가변형으로 해서 방과 방 사이를 가능한 한 많이 열고 소통하려 한다. 창문도 면적은 전면 유리보다 작지만 방의 앞뒷면에 나는 경우가 많아서 외부와 통하는 경로가 여럿이다. 벽과 창의 재료도 흙과 창호지를 써서 외부와의 단절성을 최소화했다. 개체와 개체는 원활히 통하며 이것들이 모여 집의 전체 구성을 이룬다. 도형적 윤곽과 그것이 한정하는 면적의 합으로 집의 전체를 구성하는 현대식 개념과 다른 한옥만의 공간 개념이다.

한옥의 전체 구성은 면적의 합보다는 경로의 합에 더 가깝다. 개체의 합보다는 개체 사이의 관계와 연결의 합에 가깝다. 전통 한옥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집의 평수는 보통 거론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식 개념으로 정확한 평수를 찾아내는 일부터 쉽지 않다. 30평이면 한옥으로는 작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한옥에서는 공간 이용이 벽이 한정하는 면적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과 소통하며 주변까지 사용 영역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현대식 30평집보다 훨씬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원융무애
대방광의 개념이 적용된 한옥 공간은 원융무애(圓融無礙)한 상태로 발전된다. 원융무애란 막힘과 분별과 대립이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상태로 흔히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 상태로 여긴다. 한옥 공간은 건축에서 원융무애가 구현된 예로 볼 수 있다. 직접적 연관성을 증명할 문헌 자료 같은 것은 물론 없지만 불이 공간과 대방광을 매개로 유추 해석하면 큰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불교의 원융무애 사상이 노장의 무위 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것까지 연결 고리로 삼으면 연관성은 더 커진다.

관건은 역시 벽과 공간 사이의 관계이며 공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모아진다. 이쪽 벽도 저쪽 벽도 공간이 생겨나기 위한 방편일 뿐, 벽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벽 자체가 공간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간은 이것들을 관통하고 싸고돌며 순환하고 원통하는 흐름의 상태이다. 벽과 벽 사이를 융통하며 이쪽 비움과 저쪽 비움을 서로 포함하는 흐름의 상태가 공간인데 이것이 곧 원융무애의 상태이다.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사방으로 통하는 한옥의 순환 공간은 불교의 원융무애에 유추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형상이나 언어를 넘어선 한 가지의 지혜로 모이니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했다. 불이와 대방광과 원통의 공간도 그 중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면적과 장식 등은 인연 따라 생겼다 없어지는 것일 뿐, 공간은 이런 부질없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인간의 인식으로 정의하고 벽을 세워 가두며 눈으로 보려는 것은 허망한 아집일 뿐이다. 공간은 정형으로 잡히지 않으며 규범으로 구체화되지도 않는다. 항상(恒常)의 상태로 화석화되지도 않으며 고정적 실체를 거부한다. 늘 변화하는 중에 있으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무형으로 흘러 다닐 뿐이다. 이곳이 뚫리면 그것을 인연 삼아 흘러나갔다가 다시 저쪽에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노장의 무위 개념과 다르지 않다. 그대로 한옥 공간의 특징이다.

한옥 공간의 순환성과 원통성, 여기에서 나타나는 가변성과 무형성은 원융무애를 닮았다. 한옥의 원통한 공간에서는 구별과 차별이 무의미하다. 앞뒤, 위아래의 차별이 없으며 겉과 속의 구별도 없다. 계급에 따른 위계와 별도로 순수한 물리적 구조로 보면 항상 똑같이 찰랑찰랑 차 있는 상태에 일순간 가름만이 잠시 나타났다 곧 다른 가름을 만들며 사라져 갈 뿐이다. 우주에 꽉 차있는 한 덩어리의 평등한 상태이다. 공간은 근원적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벽의 가름에 의해 현실 세계에서 한 순간 고형적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공간은 무량무수(無量無數)한 방편과 가지가지의 인연과 비유의 언사에 의해 인간의 현실사를 담아내는 포괄체로 기능한다.

유교로 본 한옥 - 한옥과 유교 이념

인격미와 전범
한옥은 유교시대 반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교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한옥에 반영된 유교사상은 사회미의 좋은 예이다. 사회미는 예술(=악樂)이 사회적 교화기능을 갖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예술을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인정은 했으나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절제되어야 하며, 즐김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가치를 함양하고 정화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맹자도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아름다움을 향한 즐거움을 들었는데, 이것이 인간의 본성임에는 틀림없으나 여기에 머물면 미가 될 수 없으며 도덕률로 구현되어야 비로소 미가 된다고 했다. 


노안당 유교미학에서는 각 집이 각자의 위계와 본성에 합당한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왕실 한옥답게 장대석 기단 위에 타고 앉아 마당을 둘로 가르며 권위를 드러낸다.


유교미학은 주로 시, 악, 화에 집중되어서 건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적은 편이나 유추 작용을 통해 건축도 유교의 사회미를 발휘하는 장르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본고장 중국보다도 더 강한 원리주의 유교가 꽃피웠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주거인 한옥은 좋은 예이다.

유교미학의 출발점은 인격미이다. 유교에서는 미를 단순히 화려한 화장이나 시각을 자극하는 외관의 꾸밈이 아니라 개인의 다듬어진 속마음으로서의 인격이 외적 형식으로 드러나는 통로, 혹은 그렇게 드러난 결과라고 본다. 인격미를 집단화하면 전범(典範)으로 발전한다. 전범은 사회가 추구하는 집단적 가치를 하나의 전형적 모범으로 굳힌 상태이다. 이때부터 사회미가 구체적 예술형식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다. 건축에서는 기능유형이 좋은 예이다. 각자의 계급과 속성과 기능과 형편 등에 합당한 공통적 건축형식이 있다는 뜻이다. 왕궁은 왕궁답게, 관아는 관아답게, 서원향교는 그것답게, 한옥은 한옥답게 보여야 하고 그렇게 작동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관아가 기생집 같아서는 안 되며 왕궁이 한옥과 같을 수는 없다. 건축은 사회적 법도와 기강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외적 형식이다.


안동 숭실재 유교를 지탱하던 중요한 축인 제사를 담당하던 건물인 ‘재사’는 숭고미를 드러내서 그 본성과 일치한다.


이 가운데 한옥은 전경에서 유교사상을 잘 드러낸다. 유교의 사회미는 아무래도 외적 형식에 치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겉치레나 잘난 체 같은 치졸한 외적 형식은 아니었다. 유교에서는 외적 형식이 반드시 내적 깊이와의 일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가정한다. 마음의 깊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드러난 외적 형식만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거꾸로 이런 외적 형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전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양과 도덕이 경지에 오른 곧은 선비는 젓가락질 하나만 봐도 다른 법이며 몸가짐 걸음걸이 말투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교육효과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생색(生色) 
똑같은 내용이 집에도 적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옥의 전경이다. 한옥의 전경은 어딘가 모르게 반듯한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 곧은 수평선이 여러 겹 겹치면서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가벼운 감정에 휩쓸려 촐랑대고 출렁거려서는 안 되며 하늘을 향한 허황된 과욕을 엄하게 경계한다. 한눈 팔지 않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인간의 본성에 치중해서 인격을 갈고 닦으라는 유교의 인본주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하루에도 십수 번을 들락거리며 바라보고 그 속에 직접 들어가서 매일을 생활하는 곳이 집이기 때문에 집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사람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현대의 환경심리학을 통해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려니와, 한옥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집의 교화기능을 알아채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안동 의성김씨 종택 집의 전경은 집안의 가풍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람의 인상에 해당된다. 유교미학에서는 이것을 생색이라고 부른다.


이런 내용을 미학 용어로 환산하면 ‘생색(生色)’이 된다. 생색은 흔히 ‘생색낸다’처럼 잘난 체 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본뜻은 그렇지 않다. 국어사전을 보면 ‘낯이 나도록 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낯’이란 체면인데, 유교에서는 이것을 개인적 명예에 한정하지 않고 집안, 문중, 나아가 국가사회의 집단적 가치를 모자라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발현하는 단계로까지 확장한다. 생색을 유교미학의 관점에서 정의하면 일체성의 한 형식으로 일체성에 진정성이 더해진 상태이다. 이런 경지로서의 생색에 이르면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그 기품이 혁혁히 빛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굳이 드러내는 것을 보고 ‘생색낸다’며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어쨌든 생색은 인격미에서 출발해서 전범에 이르는 유교의 이상적 사회미가 잘 구현된 상태이다. 잘 구현되었다는 것은 유교의 도덕률을 내적으로 충분히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내적 일체를 필수조건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것을 적절한 외적 구성으로 형식화 했다는 뜻이다. ‘신언판서’라는 말도 있듯이 유교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도 잘 갖추어야 비로소 미와 도덕과 법도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단, 반드시 내적 깊이에서 우러나온 외적 형식이어야 했다.

한옥에 적용시켜 보면 전경은 ‘집안의 가풍이 가감 없이 밖으로 드러난 상태’라는 뜻이 된다. 평생을 학문과 절제로 수양한 선비는 옷고름을 매도 다르며 멀리서 걸음걸이만 봐도 다른 법, 하물며 십수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서 불화가 잦은 집은 서까래 하나를 내도 다른 법이며 집 주인이 욕심으로 가득 찬 탐관오리라면 그 집도 야비한 욕망으로 번들거리게 되어 있다. 반대로 가풍이 화목하고 집안이 안정되어 있으며 집 주인이 절제를 훈련하고 인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 집은 딱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다. 낯을 들고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의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우리 식구의 심성과 가족 살이의 분위기를 낱낱이 알아차린다.


호연지기, 배의여도, 집의소생
유교에서는 개개 인격의 굳건함과 위대함이 사회 기강과 국가 법도의 기틀이 된다고 믿는다. 인격미가 전범으로 집단화되어 사회미로 발전하는 단계론적 세계관의 좋은 예이다. 선과 미는 단계론을 이어주는 주요 고리이다. 유교의 사회미에서는 미를 선으로 정의한다. 도덕적 본능과 심미적 본능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매개, 혹은 이 둘이 하나로 일치한 상태를 선이라 했으며 이것이 예술 형식을 통해 구현된 상태가 미인 것이다. 미란 보기 좋은 장식이나 유려한 곡선 형태나 화려한 색채배합 같은 것이 아니라 도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서 강조하는 형식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의 강령을 드러낸 한옥의 전경은 미의 좋은 예이다. 선비의 덕목인 호연지기가 출발점이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강한 기를 곧게 키워 손상시키지 않음으로써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 상태라는 것이다. 허망한 과욕으로 날뛰라는 뜻이 아니다. 한없이 뻗어나가고 싶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도덕 윤리와 교융(交融)하도록 다듬어 사회적 질서 내에서 발휘하도록 하라는 뜻이다. 호연지기는 의가 모여 훈련을 거쳐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한옥의 전경에 드러난 이상적 생색으로서의 반듯한 몸가짐과 안정된 구성은 이것의 좋은 예이다.

호연지기는 배의여도로 발전한다. 배의여도란 의를 따르고 도에 의존한다는 뜻으로 호연지기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얻어지는 도덕 윤리의 상태이다. 배의여도는 다시 집의소생으로 발전한다. 집의소생이란 의를 모아 생명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도덕 윤리에 종속된 정도가 더 심한 상태이다. 기는 의와 도덕과 떨어지면 곧 시들어버린다. 건축에 적용시키면 개별 한옥에 나타난 탕탕한 기풍이 집단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개마을 유교에서는 개별 집의 기풍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모여서 이루는 마을 전체의 분위기도 유교의 덕목에 합당해야 한다.

공시 공소(共所)로 집단화되면 문중 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된다. 하회마을, 한개(한계)마을, 양동마을, 개평마을, 인흥마을, 남사마을 등이 아직 남아있는 예들이며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고 다스리던 문중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많았다. 통시적으로 집단화하면 기능유형에 요구되는 건축적 기풍에 해당된다. 행랑채가 주인 채를 압도해서는 안 되며 사랑채가 안채처럼 포근한 것을 굳이 탓할 바는 아니나 사랑채라면 최소한 유교적 가부장제의 가장에 합당한 권위와 기개를 폭압이 아닌 모범적 성품과 곧은 기개로 드러내 보여야 하는 식이다. 이는 집 주인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유교시대 반가라면 반드시 지켜야 했던 사회적 동의사항이었던 것이다.

압력밥솥의 원리 - 따끈하고 맛있는 밥

압력밥솥이 나오기 전에는 질긴 고기요리나 잡곡밥을 할 때, 사전에 요리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처리를 한 후에 요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압력밥솥이 출시되면서 요리가 훨씬 간편해지고 시간 또한 절약되고 있다. 이러한 가정용 압력밥솥은 167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드니 파팽이 발명한 증기찜통을 개량한 것이 그 시초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가마솥을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솥의 압력을 높여 주면
대부분의 음식물은 끓는 물에서 조리하므로 1기압, 약 100℃의 물에 일정한 시간 동안 넣어두면 조리가 된다. 그러나 높은 산에서는 기압이 낮아 조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액체의 끓는점은 압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높은 산에서는 압력이 낮아 끓는점이 100℃보다 낮아지기 때문이다. 즉, 액체의 끓는점은 압력이 낮으면 낮아지고 압력이 높으면 높아지게 된다.

이런 점을 이용해 솥 속의 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압력이 높아지도록 만든 것이 압력밥솥이다. 이렇게 하면 끓는점이 높아져 잘 익지 않는 음식을 조리하기가 쉬워질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열이 음식물로 전달되어, 더 빨리 요리를 할 수 있다. 또한 요리시간이 짧아지므로 요리 과정에서 쉽게 파괴되는 비타민이나 무기질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으며 연료도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압력 밥솥 은 내부의 압력을 대기압보다 높은 1.2기압 정도로 높여 물이 약 120℃에서 끓게 한다.

솥 내부의 압력을 높여 빠르게 조리하는 압력밥솥. <출처: NGD>


압력밥솥의 종류
압력으로 밥을 하는 취사도구는 가스 불을 이용하는 일반 압력밥솥과 전기를 이용하는 전기 압력밥솥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 압력밥솥은 만든 재질에 따라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 압력밥솥으로 구분되며 전기 압력밥솥은 가열하는 방식에 따라 열판 가열 방식과 IH(induction heater 전자기 유도 가열)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열판 가열 방식은 바닥면에 있는 열판 내부의 히터로부터의  열을 이용해 열판이 가열되고 이 열이 내통에 전달돼 밥을 하는 간접 가열 방식이다. 반면 IH 가열 방식은 내솥 전체에 둘러싸인 전기 코일의 전자기유도 작용에 의해 내통 자체가 직접 발열하는 직접 가열 방식이다. 또한 전기 압력밥솥의 내통은 재질ㆍ도금의 종류에 따라 알루미늄ㆍ황금동ㆍ황동ㆍ스테인리스 스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 압력밥솥
일반 압력밥솥의 구조는 아래 그림처럼 솥뚜껑과 솥 사이에 고무를 끼우고 나사를 조여서 증기가 새지 않게 한다. 뚜껑 위쪽에는 작은 구멍이 있으며 압력추가 구멍을 막고 있다. 이 때 솥 속의 증기압이 압력추가 누르는 힘보다 크면 구멍은 열려서 증기가 방출하게 되어 위험을 피하게 된다. 압력추는 일정한 압력 이상이 되면 증기가 배출되어 안전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더욱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보조 안전장치도 부착되어 있다.

일반 압력밥솥의 구조.


IH 전기압력밥솥
전기압력밥솥은 1990년대 출시 초기에는 대부분 밑바닥만 가열하는 열판식이어서 아래부터 천천히 가열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밥을 지을 경우 종종 밑은 타고 위는 질어서 층을 이루는 층층밥이 되곤 했다. 이러한 단점을 없애기 위해 고안한 것이 IH 전기압력밥솥이다.

IH(유도가열 Induction Heating) 밥솥은 내통 자체가 직접 발열하는 통가열 방식인데, 바깥쪽 스테인리스 솥과 안쪽 알루미늄 솥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바깥쪽 솥의 바닥과 측면에는 전기코일이 붙어 있다. 밥을 지을 때 인버터 회로로 주파수가 20~40kHz가 되도록 이 코일에 교류전류를 흘려 보내고 끊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하면 전류가 흐를 때는 코일 주변에 자기장이 만들어지고, 끊어질 때는 자기장이 사라진다. 교류전류는 전류가 흐르는 방향이 번갈아가며 바뀌므로 코일 주변에 N극과 S극의 방향도 주기적으로 바뀌는 교류자장이 발생한다. 이 자력선의 변화로 전기가 발생하는 것이 전자기유도현상이다. 이 전자기 유도로 바깥쪽 스테인리스 솥에 와전류가 생기는데 이 와전류 에너지의 대부분은 스테인리스의 전기저항이 커서 열로 바뀌고 이 열이 안쪽 알루미늄 솥 전체를 통째로 가열한다. 그리고 몸통과 뚜껑 사이에는 고무로 만든 가스켓 (gasket)이 설치되어 압축된 공기가 새지 않도록 밀폐하고 뚜껑에는 압력 조정 장치가 있다.

압력 조정 장치는 압력밥솥 내의 증기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다가 취사 완료 후 유지된 압력을 회로를 통한 전원 공급으로 작동해 압력을 외부로 배출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이 장치의 종류는 일정한 무게를 가진 추를 이용하는 ‘추식’과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하는 ‘스프링식’이 있는데 대개 스프링식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압력 조정 장치의 구멍에 이물질이 끼는 등의 이유로 압력 조정 장치 기능이 상실되었을 때를 대비해 2차적으로 증기를 배출시켜 주는 압력 안전 장치도 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안전 장치를 탑재한 전기압력밥솥이 있는데, 안전 장치로는 뚜껑 온도 감지 센서, 과열 방지 알림 장치, 압력 조절 장치, 온도 과열 방지 장치, 증기 자동배출 장치, 뚜껑 열림 방지 장치, 뚜껑 결합 감지 장치, 자동 온도 센서, 연속 가열 차단 장치, 압력 안전 장치, 압력계 등이 사용되고 있다. 자동 온도 조절 장치는 바이메탈을 이용한 것으로 일정한 온도에 이르면 자동으로 회로가 열려서 과열을 막는다. 만약 자동 온도 조절기가 고장나면 퓨즈가 끊어지면서 전류를 차단시킨다.

IH 전기 압력밥솥 구조 : 솥 주변의 유도가열용 코일에 전기가 흐르면 1초에 2만5천~3만5천 번 정도의 방향이 바뀌는 와전류가 발생한다. 
이 와전류 에너지의 대부분은 외부 솥의 스테인레스가 전기저항이 커서 열로 바뀌고 이 열이 안쪽 알루미늄 솥 전체를 통째로 가열한다.


우리나라 전통 압력밥솥 ‘가마솥’
가마솥에 밥을 하면 밥맛이 좋다고 한다. 밥맛의 비결은 솥뚜껑 무게, 바닥 두께, 그리고 모양과 관련이 있다. 쌀이 잘 익으려면 대기압(1기압) 이상의 압력이 필요한데 가마솥의 솥뚜껑은 솥 전체 무게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무겁다. 따라서 수증기가 솥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여 내부압력이 대기압 이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밥이 100℃ 이상에서 지어지므로 쌀이 충분히 익게 된다. 또한 솥뚜껑이 무거운 만큼 쉽게 식지도 않기 때문에 뜸도 잘  들게 된다. 또한 가마솥의 바닥모양이 둥글기 때문에 열이 입체적으로 전달되며 불에 먼저 닿는 부분은 바닥 두께가 두껍고 가장자리 부분은 얇아 열을 고르게 전달시켜 밥이 잘 되게 된다.


압력밥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주의사항
‘22일 오전 11시 7분께 강원 강릉시 초당동 D 음식점에서 압력밥솥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음식점 직원 최모(60.여) 씨가 머리와 눈을 다쳐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2010/01/22)’

위의 기사는 압력밥솥을 사용하다가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 가운데 한 사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압력밥솥의 사용 시에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취사 중 압력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뚜껑을 무리하게 열지 않아야 하겠다. 둘째, 압력 안전 장치에 이물질이 끼여 있는지 여부를 항상 확인하며 자주 청소한다. 셋째, 고무패킹 등 소모품은 교환 시기를 확인하고 넷째, 사용설명서에 따라 압력밥솥으로 요리 가능한 음식 이외에는 조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에 유의해야 한다.

진공청소기의 원리 - 미세한 먼지도 깨끗이

머리카락이 집안 여기저기에 돌아다니고 먼지가 뭉쳐 덩어리로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진공청소기이다. 게다가 카펫이라도 있어서 카펫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면 진공청소기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먼지와 오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일 뿐만 아니라 빗자루로 해결하기 힘든 자잘한 먼지까지도 말끔히 제거해주는 진공청소기에는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일까?

진공청소기는 공기의 압력차를 이용한 기구이다. 공기는 압력차가 생기면 압력이 높은 고기압에서 압력이 낮은 저기압으로 이동하게 된다. 진공청소기는 전기에너지를 이용해서 공기의 압력차를 만들어낸다. 완벽한 진공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진공을 만들어내어 주변보다 기압이 낮은 청소기 안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진공이란 무엇일까?
진공이란 어떤 입자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진공상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우주공간은 거의 완벽한 진공이라 말할 수 있으나 지구상에서는 완벽한 진공상태를 흔히 볼 수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진공포장, 진공건조에서의 진공도 완벽한 빈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입자수를 보통의 기압상태보다 현격히 줄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진공청소기의 진공은 완벽히 텅 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분자의 수가 주위보다 아주 적은 상태의 불완전한 진공을 의미한다.


진공청소기의 역사
진공청소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1901년 영국의 발명가 세실 부스(Cecil Booth)이다. 그는 의자에 먼지를 뿌린 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손수건을 고정시켜놓은 후 입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실험을 하여 흡입식 진공청소기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세실 부스가 처음 발명한 흡입식 진공청소기는 지금처럼 조그마한 청소기가 아니고 마차에 펌프를 장치한 거대한 기계였다. 진공청소기의 크기를 현재 가정에서 사용하는 크기 정도로 줄인 사람은 미국인 제임스 스팽글러(James Spangler)이다.

늘 기침에 시달리던 그는 1907년 먼지를 빨아들이는 휴대용 진공청소기를 발명했으나 그것을 상용화시키지는 못했다. 제임스 스팽글러가 발명한 진공청소기를 상용화 시킨 것은 그에게 진공청소기의 특허권을 사들인 친척 윌리엄 후버(William Hoover)였다. 1908년부터 윌리엄 후버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진공청소기는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의 진공청소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에 처음으로 진공청소기의 국산화가 이루어졌다.

이때까지 널리 상용화된 진공청소기는 공기를 먼지와 함께 빨아들여 먼지봉투에 먼지만을 모으는 먼지봉투가 있는 진공청소기였다. 이러한 먼지봉투 진공청소기는 형태에 따라 캐니스터형(canister type), 업라이트형(upright type), 드럼형(drum type), 핸디형(hand type) 등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가정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진공청소기는 캐니스터형 진공청소기이다.

그 후 1979년 영국의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원리의 진공청소기를 발명했다. 1990년대 초에 상용화를 시작한 이 새로운 청소기는 원심력을 이용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이다. 원심분리기식 집진 장치를 이용해 원통 바깥쪽으로 먼지를 모으는 형식인데 탈수기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원통 안의 더러운 먼지를 빠르게 회전시켜 원통벽 쪽으로 먼지가 몰리게 하는 것이다.

보통의 먼지 봉투 진공청소기는 사용할수록 봉투에 먼지가 많이 차게 되어 구멍이 막히게 된다. 점점 구멍이 막히게 되면 공기가 쉽게 통과하지 못하므로 흡입구의 빨아들이는 힘도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원심분리기식 집진 장치 진공청소기는 구멍이 막힐 일이 없으므로 흡입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로봇청소기가 출시되어 진공청소기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원심력을 이용한 Dyson 진공청소기 모델 DC07 (위) 
로봇진공청소기 iRobot Roomba Discovery 2.1 (아래) 
<출처: wikipeda>


진공청소기의 구조 및 원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먼지봉투 진공청소기의 구조는 아래 그림에서처럼 일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즉, 진공청소기의 내부는 오물과 먼지가 포함된 일반 공기가 들어오는 호스 부분, 오물과 먼지를 걸러내 주고 깨끗한 바람만 통과시키는 필터 부분, 모터의 회전에 의해 약한 수준의 진공상태를 만들어내는 송풍장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지 봉투 진공청소기의 구조

위 그림에서 모터가 연결된 송풍장치는 강한 회전을 통해 청소기 내부를 외부의 보통 기압보다 낮은 기압상태(진공상태)로 만든다. 1분에 만 번 이상의 강력한 모터 회전은 청소기 내부의 공기를 환풍기처럼 청소기 외부로 뽑아내게 된다. 그러면 청소기 내부의 기압이 외부에 비해 현격히 낮아지게 되므로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는 기체의 이동 원리에 의해 고기압 상태인 청소기 외부공기가 저기압 상태인 청소기 내부로 빨려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호스를 통해 청소기 내부로 외부공기가 빨려 들어올 때 먼지와 티끌 등도 함께 섞여 들어오게 된다.

호스를 따라 들어온 먼지와 티끌 등 오물이 섞인 외부 공기는 먼지봉투에 모이게 되는데,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공기는 빠져나가게 되고 먼지와 티끌은 먼지 봉투에 남게 된다. 먼지봉투를 빠져나온 공기는 아직도 남아 있는 미세한 먼지를 걸러내주는 필터시스템을 거치게 된다. 미세한 먼지까지 모두 걸러낸 깨끗한 공기만 청소기 뒤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필터시스템이 좋지 못한 진공청소기는 흡입되는 먼지만 본다면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흡입한 공기 중에 들어있던 크기가 작은 미세먼지는 걸러내지 못하고 다시 배출하여 오히려 집안 공기를 더럽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는 필터시스템이 좋은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집먼지 진드기에 의한 천식이나 알레르기 환자가 있는 가정이나 젖먹이 아기가 있는 가정에서는 0.0001mm 크기의 작은 입자까지도 걸러내는 필터시스템의 진공청소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미세한 먼지까지 걸러내는 필터는 오래 사용하면 필터사이에 먼지가 끼어서 청소기의 흡입능력을 떨어뜨리게 할 수도 있다. 또한 먼지봉투가 가득 차게 되어도 봉투에 나있는 미세한 구멍이 막혀서 공기가 쉽게 통과하지 못하므로 청소기는 빨아들이는 힘이 약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강력한 흡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터청소를 자주 해주어야 하고 먼지봉투의 교환 시기도 늦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1분에 만 번 이상의 강력한 모터 회전에 의해 발생하는 열은 흡입된 공기가 먼지주머니와 필터를 거쳐 진공청소기 뒤로 배출되는 공기의 흐름에 의해 식기 때문에 과열을 방지할 수 있다.


적정한 전력소모, 그리고 높은 흡입력
진공청소기의 성능은 흡입력의 정도와 필터의 조밀도에 달려 있다. 진공청소기의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입능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필터가 걸러낼 수 있는 먼지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성능이 우수한 진공청소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터가 조밀하면 할수록 미세한 먼지를 잘 걸러내지만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어져서 진공청소기의 흡입력도 함께 감소하게 된다. 그리고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을 높이기 위해 모터의 회전을 늘리면 흡입력은 높일 수 있겠지만 전력소모는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적정한 전력소모 수준을 유지하면서 흡입력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미세한 먼지를 걸러내 줄 수 있는 진공청소기라야 성능이 우수한 진공청소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